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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간지 기자.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출입처 덕에 문외한인 경제에도 관심을 쏟게 됨. 그래도 아직은 초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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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29 안경을 쓰기 위해 코가 진화했다

코가 안경을 걸치기 위해 진화됐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미치광이라는 비판을 받을게 틀림없다. 사실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안경이라는 사물은 어디까지나 수동적으로 행해지는 객체지, 스스로 행위를 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객전도다.

 

사실 안경만이 아니다. 모든 사물이 그렇다. 발이 구두에 맞추는 게 아니라 구두가 발에 적응하는 게 옳다. 멋진 옷에 몸을 꿰맞추는 게 아니라 몸에 맞는 옷을 입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입고 쓰고 모든 것의 중심은 사람이다. 참으로 간단한 논리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현대사회에서 이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더 나아 보이고 싶다’ ‘다 나를 위한 것이다’는 욕망이 비논리성을 감싸기 때문에 주체에서 객체로 변한 이 상황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찰리 채플린은 빠르게 지나치는 컨베이어 벨트에 맞춰 나사를 조이는 일을 반복한다. 여기서 주인은 누구일까. 컨베이어 벨트에 맞춰 단순노동을 끊임없이 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쉴 새 없이 찰리 채플린을 지나치는 컨베이어 벨트일까. 질문의 답은 명확하다. 컨베이어 벨트를 움직이게끔 하는 것도 사람이니 주인은 사람이다. 단지 나사를 조이는 찰리 채플린은 그의 노동력을 그 시간동안에만 자본에 팔고 있을 뿐이다.

 

그럼 ‘몸짱’ 열풍은 어떻게 봐야하나. TV 속 어딜 봐도 하나같이 날씬한 사람들뿐이다. 심지어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조차도 깡마른 체형을 갖고 있다. 과거 뚱뚱함이 부(富)의 상징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게으름의 표상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다이어트는 신년 계획 가운데 하나가 됐다. 그런데 날씬하고자 하는 이 생각이 정말 내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일까. 아니면 남이 뚱뚱함은 게으른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보이지 않고자 하는 것일까.

 

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다. 비단 여성만이 아니다. 나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타자에 의해 제작된 존재일 가능성이 짙다. 여기서 타자는 권력을 갖고 있는 타자다. 이전 시대의 권력자가 소학이나 삼강행실도를 일종의 전 사회적인 규율로 만들어 자신이 원하는 인간상을 만들었다면 오늘날의 권력자는 교육과 미디어를 통해 그를 복제할 따름이다.

 

이들 논리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개인의 욕망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열심히 일하면 돈을 벌 수 있고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되뇐다. 날씬한 몸을 유지하는 것은 건강에 좋고 사람들이 당신을 높게 평가할 것이라고 자극한다. 권력자는 욕망의 가면을 쓰고 소리 소문 없이 다가온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행복유예론’은 벌써 십 년 간 유예되고 있다. 끝이 없다. 그동안 한국은 세계 13위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는데 말이다. 서구사회가 복지국가를 이룬 시점은 현재 한국의 국내총생산에 훨씬 못 미쳤을 때임을 상기해 본다면 행복유예론이 거짓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다이어트를 하다가 거식증에 걸려 고생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종종 보도되는 것을 보면 몸짱 열풍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쪽에서는 못 먹어서 굶어죽고 한 쪽에서는 안 먹으려고 하다가 죽는 상황에서 정작 살을 찌우는 것은 몸짱 욕망을 앞세운 권력자다.

 

그의 이름은 자본이다. 그는 말한다.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크게. 그래서 지친 당신에게 필요한 건 ‘게으를 권리’다.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을 위해 일하고, 몸을 사회에 내맡기는 게 아니라 개인 스스로 돌보는 그런 여유 말이다. 아마 그렇지 않다면 코는 안경을 쓰기 위해 진화했다는 생물학적 농담을 결코 농담으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을지 모른다. 더 이상 당신은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posted by 펜의팬 펜의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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